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능성 구씨 (문단 편집) == 기원 == 능성 구씨의 시조 구존유가 [[1224년]] 주잠과 함께 중국에서 도래했다는 일부의 주장이 있으나, 중국에 있는 신안 주씨의 기록에 구존유는 고려인으로 기재되어 있으며, [[1224년]] 이전부터 [[호남]] 지방에 토착 구(具)씨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후백제]]가 멸망한 뒤 나주(羅州)에서 포로로 잡힌 [[후백제]] 장군 구도(具道)의 아들 구단서(具端舒)가 있고, 궁예의 태봉국 시중(侍中)이었던 구진(具鎭)이 918년(태조 1) 나주도(羅州道) 대행대(大行臺) 시중(侍中)에 임명되었으며, 1101년(고려 숙종 6년)에 탁라(乇羅) 성주(星主)인 배융부위(陪戎副尉) 구대(具代)가 유격장군(遊擊將軍)에 임명되었던 사실을 《고려사》(高麗史)에서 확인할 수 있다. 즉, 구씨(具氏)가 예로부터 나주(羅州)나 능성(綾城) 지역의 토착 성씨로 이미 존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의 <능성현>(綾城縣) -토성조-(土姓條)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능성현>(綾城縣) -토성조-(土姓條)에도 구씨(具氏)를 능성현(綾城縣)의 대표적인 토착 성씨로 기록하고 있다. [[http://www.neungsungkoo.com/htmls/bo/bo8-11.htm|대종회에서는 역사서를 근거로 중국 도래설을 반박하고, 능성 구씨가 토착 성씨라는 의견들을 제시했다.]] 첫째, 고려 이전에도 [[호남]] 지방에 토착 구씨가 존재했다는 점이다. 둘째, 본문에 언급한 바와 같이 여러 역사서에 능성 구씨가 토착 성씨로 기록된 점이다. 셋째, 중국 측 주씨의 기록에는 구존유가 고려인으로 되어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대에 편찬된 신안 주씨의 족보를 토대로 능성 구씨가 중국계 성씨임을 주장하는 일각의 주장은 역사 사실과 맞지 않다. 넷째, 현재 중국에는 구(具)씨 성을 가진 씨족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능성 구씨가 중국계 성씨라는 주장은 모화사상에 기초하여 중국과의 관련성을 부각하고자 했던 시도로 보는 것이 설득력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